경기도 여주의 유형문화재인 명성황후탄강구리비와 명성황후 생가에 다녀온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명성황후생가 유적지 관람료는 없지만, 주차요금은 유료입니다. 매표소에서 주차요금을 내고 주차하면 연못이 보이는데 그곳에서 유적지 관람순서를 알려줍니다. 먼저 명성황후 기념관으로 해서 생가, 민속 마을, 감고당 순입니다.
문예관은 161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경기도 다양성 영화관으로 영화, 인형극 등을 보여줍니다.
5월 29일(토) 17:00~18:10 고상지 트리오 - 반도네온의 항해 공연이 있는데 벌써 마감 되었습니다.
여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명성황후를 기념하기 위해 여주시가 설립한 공립박물관인 명성황후 기념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관람 시간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입니다.
마스크는 기본 착용이고 전자출입명부는 전화를 걸어 확인합니다. 이제는 이런 통과의례가 없다면 이상할 정도입니다. 아이들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전화를 하면서 이 전화는 콩하고 상관없다고 합니다.
처음에 콩이 뭔가? 했더니 어린이들의 전화 사용과 관련 있는 것 같더군요.
기념관 입구에는 명성황후와 고종황제의 진영이 걸려있고 명성황후 일대기가 그림으로 걸려있습니다.
명성황후가 태어나 살았던 그 시기에 있었던 연표가 있어 이때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사건이 있었나를 연관 짓고 잠시 세계사를 공부합니다. 기념관에는 여흥민씨와 관련된 자료부터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명성황후(1851~1895)는 16세에 고종의 비로 간택되고 고종의 황제 즉의 후 명성황후가 되었습니다.
1895년(고종 32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 내 옥호루에서 일본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난자 시해하고 시신은 궁궐 밖에서 불태웠는데 단발령, 을미의병 봉기, 아관파천 등으로 격랑 속에서 장례도 치르지 못했습니다. 1896년에야 황후의 국장 논의가 이루어져 1897년 11월에 명성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국장으로 청량리 홍릉으로 옮겨 조성되었다가 후에 고종과 함께 경기도 남양주 홍릉에 잠들어 계십니다.
명성황후가 9살부터 16살에 왕비로 간택될때까지 살았던 생가(경기유형문화재 제46호)
1687년(숙종 13년)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그 당시 건물은 안채만 남아 있습니다. 1996년에 안채를 수리하고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을 지어 원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민유중 신도비
인형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은 조선 제19대 숙종의 장인으로 명성황후의 6대조 할아버지입니다.
묘는 위쪽 150m 지점에 있는데 못 가 봤고 신도비만 보고 왔는데 신도비는 죽은 이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죠.
명성황후탄강구리비(경기유형문화재 제41호)
생가 옆으로 명성황후가 어렸을 때 글공부를 하던 방이 있던 자리에 세웠습니다.
앞면 ‘明成皇后誕降舊里(명성황후가 태어난 옛 마을)’
뒷면 ‘光武八年甲辰五月日拜手飮涕淚敬書(광무 8년 갑진 오월 어느 날 엎드려 눈물을 머금고 공경히 쓰다)’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랑채(왼쪽)와 마주한 행랑채(오른쪽)
슬슬 생가를 둘러볼까요. 솟을대문을 지나 ㅡ 자형 행랑채가 있습니다. 중문과 사랑이 붙은 ㄱ자형 문간채와 안채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ㅁ자형을 이루며, 그 옆으로 독립된 ㅡ 자형 별당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명성황후의 집이였던 게 아니고 1687년(숙종 13)에 신도비의 주인공인 부원군 민유중의 묘막으로 건립되었습니다. 당시 건물로서 남아 있는 것은 안채 뿐인데 1975년과 1976년에 한번 중수하였다가 1996년에 다시 수리하면서 행랑과 사랑, 별당 등을 함께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답니다.
당시 안방은 직계존속 외 남자는 출입이 금지되었다죠. 안방 마루에도 명성황후 진영이 모셔져 있습니다.
1996년 복원한 명성황후가 지낸 별당.
글 읽는 소녀의 모습이 있는데 해맑게 웃는 모습이 예쁩니다.
민가 마을로 기념품점, 음식점 등이 있습니다. 한복체험도 한다고 하죠.
정원에서는 전통 놀이도 하는데 마침 가족이 와서 링 굴리기를 합니다. 먼저 아버지가 시범을 보이고 아들이 따라 하는데 잘 하네요. 작은 아이는 하다 못하니 훌라후프 대용으로 사용하네요.
아버지 민치록이 1남 2녀 자식 모두 일찍 죽어 부부가 정성을 들여 이 바위에 기도하고 53세 때 무남 독녀 명성황후를 낳았다죠. 그래서 이 바위는 소원바위로 감고당과 민속 마을 사이에 있습니다.
감고당 안채(왼쪽), 사랑채(오른쪽)
인형왕후가 친정아버지 민유중을 위하여 안국동에 지어준 집입니다.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모함으로 폐비가 되어 5년간 살았고 명성황후가 8살부터 16살까지 왕비로 간택될 때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그때 인현왕후가 꿈에 나타나 "너는 장차 내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 했다는군요.
서울에 있언 집이 여주에? 안국동에서 쌍문동으로 이전했다가 2006년 여주로 원형을 이전 복원한 것입니다.
날씨도 선선해서 간단한 당일치기 여행지로 추천하는 명성황후 생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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